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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체험수기 공모전 당선작-사랑상]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야기
작성자 관리자 날짜 2017-08-05
이메일 kabo@kabobed.com  조회수 3164 

얼마 전.. 가보침대에서 보내주신 문자를 보았습니다. 체험수기라..

과연 내게도 수기를 쓸 만한 짜릿한 일들이 있었나를 생가해 보았습니다.

내게는...희열을 느끼며 즐거웠던 경험은 사실 없습니다. 

다만 누구에게도 함부로 말할 수 없는 저희 가족만의 아주 아름답고 고귀한 사연을 말하려 부족하지만 이렇게 글을 씁니다. 먼저 저는 꼭 경품 때문에 이글을 쓰는 건 아니네요. 

다만 내 아들이 품었던 작은 희망과 소망을 담아보려 용기 내어 이글을 씁니다. 

언제였나요. 우연한 기회에 흙침대가 건강을 돌보는데 좋은 밑거름이 될거란 생각이 들어 여러 회사의 흙침대들을 이곳저곳 다니며 흙의 체취부터 생산과정 그리고 판매에 이르는 여러 과정들을 꼼꼼히 비교한 후 드디여~~“가보흙침대” 를 저희집 안방에 들여놓게 되었습니다.


저희 가족은 우리나라의 표준 가정인 부부와 자녀 둘..이렇게 네식구!

침대가 처음 들어오던 날.. 저희 부부는 물론이고 무엇보다 우리 큰아들이 너무 좋아했습니다. 

지금도 그날을 생각하니 가슴이 뜨거워지네요. 

당시 10살. 나의 큰아들을 위해 큰맘 먹고 장만한 침대였으니까요. 우리큰아들은 매일을 흙침대에서 놀았습니다. 흙침대에서 밥을 먹고 잠을 자고 간혹은 침대에서 동생과 싸우기도 하고.. 

녀석~ 얼마나 이 침대를 좋아했는지 하루의 대부분을 흙침대와 함께 했습니다.


네~~ 제 큰아들은 소아암 환아입니다.

처음 침대를 들여놓던 2008년 당시 만 4년을 치료하며 세 번의 재발로 인해 심신이 쇠약한 상태였어요. 그래서 학교도 갈수 없어 흙침대에 앉아 노트북속의 사이버학교(인터넷 초등학교)를 다닌 내 아들이 이 침대의 주인입니다. 온종일 침대가 놀이터였죠~ 


지금 생각해보면 우스웠던 기억도 많습니다. 한번은 동생과 블록놀이를 하겠다며 침대위에 와르르 블록을 쏟아놓고서는 침대 테두리를 빙돌아 쌓아 담을 치고는 자기들의 궁전이라며 동생과 고래고래 소리지르며 좋아하며 놀던 생각이 나네요. 밤이되어 잠자리에 들때면 우리 네식구 모두 흙침대에 올라와 잠을 청했습니다. 비록 얼마지나 아빠는 바닥으로 밀려나는 신세가 되긴했지만.. 우리 아들들 너무도 편안히 침대에서 잠이 들었습니다.


저희집 침대가 사이드 틀이 어찌나 튼튼하든지 침대옆쪽으로 나란히 누으면 자리도 넓고 무엇보다 난방을 하체쪽으로만 할 수 있어서 등이 더워 생기는 아이들의 땀이 흐르는 일도 방지할 수 있고 머리는 서늘하고 허리 아래로는 뜨끈뜨끈한 건강한 수면을 할 수 있어서 지금은 우리 가족이 이런방법으로 흙침대를 이용하고 있습니다.


그해 겨울은 너무도 따뜻했습니다. 이쯤 되니 제 큰아들 얘기를 더 안할 수가 없네요.

침대를 구입할 즈음 제 큰 아들은 말기 암환자로 생을 얼마 남기지 않은 불면 날아갈듯한 가녀린 팔다리로 처음 침대를 구입할 때는 거의 침대에 누워만 있었습니다. 


언제고 하늘나라로 갈 수 있는 어느날에 이별이 찾아올지 가늠조차 할 수 없는 그런 긴박한 하루하루였습니다. 

병원에서는 이미 사람이 할 수 있는 치료는 모두 했다며.. 그래서 되도록 가족과 많은 시간을 편하게 지내게 하려고 흙침대를 구입하게 되었던거죠.

그렇게 하루이틀 시간이 흘렀습니다. 달반쯤 지나자 신기하게도 아이가 침대 아래로 내려와 거동하는 일이 생겼습니다. 대소변조차 침대에서 해결했는데..

아이가 주방에서 일하던 엄마곁으로 “엄마! 나 화장실 갈래~”하며 나오는게 아니겠어요.

순간! 얼마나 놀라고 반가웠는지 아이를 끌어안고서 너무 기뻐 눈물을 다 흘렸습니다.

그렇게 조금씩 아이는 기운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건강한 사람들이 볼 때는 대수롭지 않은 일이겠으나 생을 얼마 남기지 않은 제 아들에게는 실낱같은 희망을 갖게 하는 순간이었습니다. 그렇게 또 다시 꿈을 갖기 시작했고 몇 달뒤 체력은 놀랍도록 회복이 되었습니다. 

그렇게 다시 힘든 항암치료를 하러 병원으로 들어갈 상황이 만들어졌습니다. 병원가는 문을 나서기 전 녀석이 하던 말이 생각납니다.


“엄마! 내침대(가보침대) 가져가고 싶다. 의사선생님한테 말하면 1인실에 가져갈 수 있을텐데..” 

그 정도로 침대가 좋았나봅니다. 그렇게 병원으로 들어가 또다시 독한 항암치료가 시작되었습니다. 

그러나 제 아들은 그 후로 집으로 돌아오지 못했습니다.

5년간의 치료동안 두 번의 골수이식, 세 번의 재발, 7번의 대수술.. 그리고 방사선치료..

더는 몸이 견디질 못했나봅니다. 이제는 그만하고 싶었나 봅니다.


가끔은 후회도 됩니다. 그 만큼이나 체력이 좋아졌을 때 치료를 포기하고 요양하며 체력을 키웠더라면 가족과 얼마간 더 함께할 수 있었을 텐데.. 자식을 향한 부모맘이 그렇지가 않더군요. 

치료를 하지 않고서는 어차피 시한부 삶을 살아야 했을테니..

그렇게 큰아들은 좋은 침대를 남은 가족에게 선물로 주고 떠나갔습니다. 지금은 넷이 아닌 셋이서 침대를 쓰고 있습니다. 이사를 할 때도 가보는 너무도 친절하고 정확한 서비스를 제공해 주더군요. 무거워 옮기지 못했던 살림들도 옮겨주시고. 벌써 두 번이나 침대를 옮겼는데.. 

그때마다 너무 친철하시더군요. 서비스 신청 전화 받는분도 친절히 상담해주셨구요.

며칠전 이제는 외아들이 되어버린 내 작은 아들이 침대 머릿쪽에 박혀있는 수정에다 손가락을 갖다대며 “나 이번에 태권도 가서 초록띠 꼭 따게해줘~!” 하며 수정에다가 소원을 빌더라구요. 

그래서 물었더니 “형아가 이 수정에다가 소원을 빌면 다 이루어진다고 했어!” 라고 하더군요. 

둘만의 비밀이 있었나봅니다. 


이렇듯 우리가족에게 이 침대는 함께 공감할 수 있는 꿈을 꾸었던 장소이며 내 큰아들이 꿈을 꾸고 희망을 갖고 소망을 말하던 장소였습니다.

남들이 하늘 나라로 떠한 아이 생각나서 어떻게 쓰냐고 가끔 물으십니다.


답 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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